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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맡은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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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대본을 빚어내는 택시 운전사. 프랑스에서 22년간 택시 운전을 했던 그는 최근 한국에 귀국하여 악역배우를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모노드라마monodrama나 팬터마임pantomime을 맡은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애로물이나 액션물 대역으로 나오는 삼류 배우는 더더욱 아닌 듯 했습니다. 무인시대武人時代에 나올 법한 사회주류 계층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악역배우였습니다. 물론 그가 악역을 자청한 시대는 ‘그때 그 시절’ 아닌 ‘지금 이 시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였습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대사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입니다”하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대한민국이 공화국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아도 악역을 자처한 그 배우는, ‘대한민국이 사회귀족의 나라이기 때문이요, 그들 귀족들은 명사니 사회지도층이니 하는 허울 좋은 이름을 달고 다니면서 정계, 관계, 교육계, 학계, 문학계, 언론계, 법조계, 종교계까지 두루두루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회부문에 견제당할 두려움이나 그런 의식조차 지닐 필요가 없는 난공불락의 성채 안에 보호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악역 배우의 그 말에, 순간 나는, ‘저 배우가 하는 말이 분명 독백은 아닌 듯한데, 그렇다고 감히 누구도 열지 말아야 될 입을 당돌하게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나도 한 마디 묻고 싶었습니다. ‘그 귀족 사회란 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말입니까? 그리고 그 귀족 사회를 어떻게 참다운 공화국, 국민 모두의 사회로 재편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나의 말에 사회 귀족층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던 그 배우는 그의 시선을 그의 아내가 아직 머물고 있는 프랑스 사회로 돌리면서, ‘사회 귀족이란 말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국가 귀족”에서 빌려온 말입니다. 프랑스에서는 국가귀족이 국가의 공공기관 부문만을 장악하고 있지만 한국의 사회귀족은 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배력을 행사 하고 있으니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당연히 이들에게는 귀족의 전통적 덕성인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난공불락과도 같은 귀족 사회의 성채를 허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연대가 결성되어, 하루 8시간 노동, 주 5일 근무제, 주택정책, 교육비의 국가부담 등까지 두루 지적해야 하고, 사회 귀족의 무기인 힘의 논리라든지 서열의 논리를 깨뜨리는 게 필요합니다. 더욱이 합리와 이성이 온 사회에 보편화되도록 힘써야 하며, 고교 평준화뿐만 아니라 대학평준화까지 유도해 내야하며, 사회귀족을 지지하거나 침묵하는 지식인과 조선일보와 같은 극우 언론의 헤게모니에 빠져들기보다는 그들 모두가 진리의 아가리를 열도록 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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